지는 뉴머니 룩, 뜨는 올드머니 룩
몇 년 전부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영앤리치(Young & Rich) 신드롬이 불었다. 유명 래퍼에서부터 모델, 배우, 셀럽, 그리고 혜성처럼 등장한 인플루언서 등 그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부를 획들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명품을 두르고, 몇 억짜리 자동차를 타면서 그들이 가진 자산과 부를 과시해왔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그들의 로고로 치장된(발렌시아가의 로고가 가득한 스웨터나 구찌의 G로고가 가득한 점퍼 등) 디자인들을 앞다투어 선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뉴머니 룩(new money look)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로고 플레이라고 해서 몇 년 동안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그러한 행보는 지속되었다. 그런데 이런 뉴머니 룩의 플렉스가 더 이상은 쿨해보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가장 힙한 스타일 아이콘인 카일리 제너도 최근에는 명품 로고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올드머니 룩이란
현재 모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Z세대는 그동안 심취해있었던 Y2K와 1990년대를 벗어나, 올드머니 룩(old money look)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 전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바람이 불고 있다. Z세대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틱톡(TikTok)과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는 올드머니의 패션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 뿐 아니라 올드머니의 행동 양식과 습관까지 유행이라고 한다.
이러한 트렌드를 만든 대표주자는 미국의 RNB 가수 라이오넬 리치의 막내딸인 소피아 리치(Sofia Rich)라고 할 수 있다(심지어 이름에도 리치가 들어가다니..금수저는 태생부터 금수저인가). 소피아 리치는 최근에 유니버셜 뮤직 회장의 아들이자, 독립 음반사 ’10K 프로젝트’ 창립자인 엘리엇 그랜지(Elliot Grainge)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서 입었던 세 벌의 드레스가 모두 샤넬(Chanel)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우리는 샤넬 신발 하나 신기도 버거운데…),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 드레스가 샤넬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이 결혼식과 드레스가 화제가 되면서 소피아 리치는 올드머니 룩의 대표주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모태 금수저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활약중인 소피아 리치는 본래 모델 출신으로 꽤 오래전부터 SNS를 통해 그녀만의 패션 스타일을 공유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워낙 화려함을 추구하는 로고들이 판을 치다보니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웨딩 이슈가 크게 화제가 되면서, 그리고 플렉스에 지쳐가던 사람들에게 소피아 리치의 찐부자 냄새가 물씬 나는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지금 올드머니 룩의 인기와 함께 소피아 리치는 2023년 올드머니 룩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올드머니 룩의 뜻
먼저 올드머니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오래된 돈’, 즉, 벌기 보다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명 가문에서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가리키는 말(wealth that has been inherited rather than earned)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오랫동안 돈이 많았다고 해서 올드머니라 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케네디 가문이나 월마트의 월튼가, 힐튼호텔의 힐튼가처럼 사회적 지위도 높고, 사회적인 공헌도 많은, 이러한 것들이 함께 고려되어 올드머니라는 명칭을 붙인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삼성가, 현대가처럼 오래된 부자 가문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의 이부진 사장이 공식석상에서 착용한 의상이 알렉산더 맥퀸이다, 가방은 어디 브랜드다 라는 식의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올드머니 룩의 트렌드는 현재 주목받고 있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이런 올드머니 가문의 사람들이 평소에 즐겨입거나 혹은 사교모임을 가질때 입고 등장하는 스타일들을 올드머니 룩이라고 일컫는데, 대부분 눈에 띄는 로고나 장식들 없이 질 좋은 옷의 소재에 포커스를 맞춘 패션이라 생각하면 된다.
브랜드를 꼽아보자면, 로고가 가득한 디자인을 몇 해째 선보이고 있는 구찌나 발렌시아가, 지방시 등은 뉴머니 브랜드라고 할 수 있고, 브루넬로 쿠치넬리, 막스마라, 로로피아나, 미국 럭셔리 브랜드 더 로우, 랄프 로렌, 질 샌더, 델보(Delo) 그리고 돈이 있다고 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에르메스(Hermes)처럼 미니멀리즘을 기본 디자인 철학으로 두고 다수보다는 소수의 소비자들을 위해 정진한 브랜드들이 바로 올드머니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올드머니 룩의 특징
1. 컬러
올드머니 룩의 특징 중에서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컬러라고 할 수 있다. 올드머니 룩에는 차분한 뉴트럴 컬러들이 중점적으로 사용된다. 기본적으로 블랙과 화이트를 베이스로 깔고, 아이보리나 베이지, 네이비와 같이 클래식하고 보수적인 느낌의 색들을 전체적인 룩에 통일시키거나 톤온톤(유사한 색상 안에서 톤만 다르게 스타일링)으로 매칭하는 것이 올드머니 룩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너무 밋밋하다 싶으면 벨트나 가방, 혹은 주얼리 등을 그린이나 레드와 같은 포인트 컬러로 매칭하면 한층 젊고 세련된 올드머니 룩을 추구할 수 있다. 추가적인 스타일링 아이템으로 실크 스카프와 클래식한 쉐입을 가진 선글라스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2. 패턴(무늬)과 실루엣
올드머니 룩에서 옷에 들어가는 패턴들을 살펴보면, 클래식함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운드 투스 체크라던지 단순한 스트라이프 문양, 혹은 작은 체크 패턴처럼 오래전부터 기본적으로 사용되던 패턴들이 어우러지는 것이 올드머니 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올드머니 룩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다이애나 전왕세자비의 격식있고 격조있는 전통적인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는데, 최근에는 캐주얼함이 반영되면서 과거에 비해서는 한껏 여유있는 실루엣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테일러링 셔츠가 아닌 캐주얼 셔츠는 물론 계절에 따라서 니트 슬리브리스나 캐시미어 스웨터를 트렌디한 와이드 팬츠와 함께 스타일링 한다던지, 턱이 잡힌 면 소재의 캐주얼한 반바지를 활용한 다양한 스타일링도 자주 볼 수 있다.
전통적인 테일러링 수트 아이템들도 트렌드가 많이 반영되어서, 과거의 전통적이지만 다소 딱딱한 실루엣과 스타일링에서 벗어나 오버핏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룩들도 많이 등장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오드리 햅번이 착용했던 단정한 블랙드레스는 올드머니 룩의 시그니처 아이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블랙 드레스는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꾸준히 재해석되면서 올드머니 룩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여성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여러 드레스도 함께 참고하면, 올드머니 룩의 느낌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
올드머니 룩은 미국인의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현재 영국의 윌리엄 왕자의 부인이자 현대판 신데렐라의 주인공인 케이트 미들턴과 같은 귀족의 패션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미국의 패셔니스타 기네스 펠트로와 영국의 패셔니스타 알렉사 청(Alexa Chung)의 시대를 지나 현재 소피아 리치와 제너 자매, 켄달 제너(Kendall Jenner)와 카일리 제너(Kylie Jenner)까지 이어오면서 올드머니 룩은 그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진화해 왔다. 국내에서는 또 어떤 다른 모습으로 트렌드화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