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시대 궁중에서는 일상 생활에 사용하는 생활품에도 자수를 놓아서 왕실의 품격을 살렸습니다. 궁중에서 자수로 장식한 대표적인 생활품으로는 침구, 주머니, 노리개 등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왕조 왕실 주머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궁중에서 사용했던 주머니는 그 형태와 장식, 용도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릅니다.
형태적으로 분류하면, 가장자리가 각이 지고 모난 것은 귀주머니 또는 줌치라고 부르고, 가장 자리가 둥근 것은 두루주머니 또는 염낭이라고 부릅니다. 장식에 따라서는 금박을 한 부금주머니, 자수를 놓은 수주머니 등이 있으며, 용도별로는 향낭(香囊: 향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 약낭, 침낭(針囊: 바늘을 넣어서 보관하는 주머니), 필낭, 수저집, 안경집, 거울집, 쌈지 등 다양한 주머니가 있습니다.
또한 새해 첫 돼지의 날[해일亥日]과 쥐의 날[자일子日]에 왕실어른에게 헌상하고, 종친과 대신들에게 선물로 내리는 주머니도 있는데, 이 주머니에도 역시 아름다운 수를 놓았습니다. 궁중의 침방針房에서 바느질하고, 수방(繡房)에서 수를 놓은 다음에 고얏방에서 끈과 매듭 등을 꾸며서 내전으로 올렸습니다. 주머니 속에는 콩을 볶아 붉은 종이에 싸 넣어 보냈는데 이것을 차면 액운을 물리치고 한 해 동안 평안하다고 믿었습니다.
두루주머니, 염낭
두루주머니는 형태적으로 가장자리가 둥근 것을 말합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두루주머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왼쪽의 두루주머니는 순종비 순정효황후가 영친왕비英親王妃(1901~1989년)에게 하사한 두루주머니로 홍색의 무늬가 있는 비단에 금사를 징그어 수놓은 궁낭宮囊입니다. 중앙에는 두 마리 학이 정면을 향하여 날아들어 긴 목을 서로 부드럽게 감고 있는 모습을 수놓았습니다. 문양 전체에 징금 수를 사용하였으며, 면을 채운 징금수 위에 징금수를 한 번 더 놓아 문양의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사이즈는 8.0×10.7cm 정도 됩니다.
오른쪽의 두루주머니는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1931~2005년)의 돌 때 만든 두루주머니입니다. 꽃무늬가 있는 홍 색비단에 오색실로 바위, 파도, 연꽃, 불로초, 원앙을 수놓고 각 문양의 가장자리와 상단 의 ‘수壽’자문을 금사로 징그었습니다. 주머니를 묶는 매듭에는 술과 금으로 된 거북, 천도 등 길상적인 장식물을 매달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입니다. 사이즈는 12.5×14.0cm 정도 입니다.
아래의 두루주머니는 20세기 초에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가 가지고 있던 소형 자수 두루주머니입니다. 각 길이가 약 4.5cm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무늬가 있는 비단에 오색실로 바 위・파도・꽃・원앙・연꽃 등의 무늬를 평수, 매듭수 등으로 수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무늬의 가장자리는 왕실에서 주로 사용되던 금실로 징금수를 놓아 장식하였고, 주머니 입구에는 끈을 끼우고 매듭을 지었습니다. 현재는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귀주머니, 줌치
귀주머니는 각진 형태의 주머니로 꾸밈은 남녀용이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주머니 끈은 성별에 따라서 색상이 달라지는데, 남자용은 푸른색· 진보라색·고동색을, 여자용은 다홍색·푸른색·자주색 등을 바탕색에 잘 어울리는 색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의 귀주머니는 20세기 초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좌우 각각 14cm x 14cm / 15.5cm x 14cm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약주머니(약낭,藥囊, Medicine Pouch)
약주머니는 약을 휴대하기 위해 가지고 다녔던 주머니입니다.
5각의 덮개가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아래 주머니는 약재를 넣어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한 왕손용(王孫用) 약낭(藥囊, 약주머니)입니다. 1922년에 제작된 것으로, 영친왕 일가가 순종(純宗)을 알현할 당시에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가 부귀장수를 기원 하는 뜻에서 진왕자(晋王子)에게 하사했던 주머니입니다.
자수로 가득차 있는 이 주머니는 비단이라 불리는 실크 소재로 제작하고 평수, 솔잎수, 매듭수 등으로 십장생 무늬를 수놓고, 가장자리는 금실로 징금수를 놓아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안에는 액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가진 황두(黃豆)를 황색 한지에 싸서 넣었습니다. 약주머니의 크기는 10.4cm x 9.0cm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영친왕비 향주머니
1922년 영친왕이 순종 알현시 순정황후(純貞皇后)가 부귀장수(富貴長壽)를 바라는 뜻에서 진왕자晋王子에게 하사한 주머니 중 하나입니다. 향낭은 한 쪽은 홍색, 다른 한 쪽은 황색의 비단에 석류문(石榴文)과 모란문(牡丹文)을 금·은사로 정교하게 수를 놓았습니다. 안에 세모로 접힌 창호지에 고급향을 싸서 넣었는데 이것을 몸에 지녀 항상 은은한 향기를 품도록 했습니다.
붓주머니(Writing Brush Pouches)
붓주머니란 글자 그대로 붓을 넣고 다니던 주머니입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주머니는 20세기 초의 것으로 사료됩니다. 크기는 왼쪽 붉은색 주머니가 26.2×8.4cm, 오른쪽 옥색 주머니가 34.9×9.8cm 정도로 약간 더 큽니다.
붉은색 주머니는 앞면에 십장생무늬와 매화, 대나무 등을 수놓고 뒷면에는 장수와 다복을 기원하는 ‘수여남산壽如南山’과 ‘복여북해福如北海’를 수놓았습니다. 옥색 주머니의 앞면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팔천춘추壽八千春秋’와 불로초 등을 수놓고 뒷면에는 칠보문 등을 수놓았습니다. 오색실과 금사로 평수, 솔잎수, 매듭수, 징금수 등의 기법으로 길상문을 화려하게 수놓아 장식성과 함께 장수와 다복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습니다.
수저집
수저주머니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넣어두는 주머니를 말합니다.
아래 사진의 왼쪽 수저집은 20세기 초의 것으로 홍색의 비단에 수를 놓아 만든 자수 수저집입니다. 앞면에는 바위・영지・파도・소나무・모란・쌍 학 등의 문양을 오색의 꼰사로 솔잎수, 자련수, 평수, 징금수 등의 기법을 사용해 별도의 테두리를 두르지 않고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수를 놓았습니다. 뒷면에는 백년동안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문구인 ‘백년수외갱강녕百年壽外更康寧’와 ‘만사한중겸부귀萬事閒中兼富貴’ 글귀를 평수로 수놓아 장수와 다복을 기원하였습니다.
수저집의 뚜껑 앞뒷 면에는 각각 두 송이의 매화를 수놓고 그 중앙에 겨자색 끈을 꿰어 다섯개의 오색봉술을 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