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 왕실 혼례는 왕비와 왕세자빈의 경우에는 육례(六禮), 그 외 왕실의 여성들은 사례(四禮)라고 불리는 절차에 따라 치뤄졌습니다. 육례는 납체(納采)-납징(納徵)-고기(告期)-책례(冊禮)-친영(親迎)-동뢰(同牢)로 이루어지고, 사례는 고기와 책례 2개의 절차를 제외한 납체(納采)-납징(納徵)-친영(親迎)-동뢰(同牢)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주의 혼례 중에서 동뢰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활옷은 왕비의 옷에만 사용되던 귀한 대홍색 옷감 위에 각종 길상 무늬를 곱게 수놓은 홍장삼으로 특별히 왕실 혼례를 위해 마련된 의례복 이었습니다.
혼례의 최종 의식인 동뢰연을 치르는 날은 공주가 활옷을 입는 날이었습니다. 공주는 혼례 준비를 위해서 궁궐 밖에 마련된 공주궁에서 활옷을 갖춰 입었습니다. 공주의 신부 치장은 장인인 수모가 꾸밈을 담당했는데, 조선시대 왕실 혼례가 기록된 의궤에 따르면, 공주의 꾸밈에는 6~25명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수모는 머릿 기름과 빗으로 공주의 머리를 정리한 후, 얼굴에는 백분을 발라서 밝게 만들로, 입술과 볼에는 붉은 색 연지로 색조 화장을 더했습니다.
왕실 의례복인 활옷을 착용할 때에는 겉옷 안에 속옷 뿐만 아니라 받침옷이라고 부르는 여러 벌의 옷을 갖춰 입었는데, 의례가 중요할 수록 갖춰 입는 옷의 가짓수도 따라서 많아졌습니다.
공주의 혼례복 하의 입는 방법
공주의 혼례복인 활옷도 격식에 맞는 입는 방법과 그 구성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먼저 하의 속옷은 4개가 있는데, 다리속곳 – 속속곳 – 속바지 – 단속곳을 입고, 그 위에는 속치마라고 분류되는 무기지 치마, 대슘 치마를 입었는데, 이것은 치마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속곳은 치마 바로 아래에 입는 것으로 길이는 치마보다는 짧고 중앙 아래가 막혀있는 바지와 같은 형태의 속옷입니다. 더 안쪽에 착용하는 속속곳과 모양은 동일하지만, 옷맵시를 살리기 위해 단속곳은 더 크고 풍성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고종(재위 1863~1907년)의 딸인 덕혜옹주(1912~1989)가 착용했던 속옷으로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단 소재로 만들어졌고, 허리둘레는 52cm, 길이는 61.5cm 정도 됩니다.

공주의 혼례복 상의 입는 방법
상의는 분홍색이나 보라색 속저고리 위에 엷은 노란색인 송화색 삼회장(三回裝) 저고리를 입고 초록색 당의를 덧입었습니다. 하의 역시 단독으로 입는 게 아니라 스란단을 덧댄 남색과 홍색 치마를 겹쳐입는 것이 규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받침옷이 갖춰지고 나면, 마지막으로 활옷을 걸친 후에 의례복의 부속품인 대대와 후수, 폐슬, 패옥 등을 장식하고, 머리에 가체를 올려 갖춤을 마쳤습니다.

삼회장저고리(三回裝赤古里 / Contrast Patchwork Jacket)의 사진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삼회장은 깃과 고름, 겨드랑이, 그리고 끝동에 다른 색의 옷감을 대서 만드는 저고리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경사스러운 예식에 참석하는 왕실과 양반가의 여자들은 송화색의 삼회장 저고리를 당의 바로 안에 갖춰 입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당의(唐衣 / Semi-formal Jacket)는 왕실이나 반가의 여자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례복입니다. 혼례식처럼 격식있고 중요한 의례에 착용하는 대례복 안에 입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저고리보다는 길이가 길기 때문에 양 옆은 깊게 트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실 여자의 당의에는 보를 달고 부금이나 직금으로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 외의 여성들은 당의에 장식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왕실 문헌에서는 저고리(赤古里), 당저고리(唐赤古里), 당고의(唐古衣), 당의복(唐衣服) 등의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란치마(Double-row Patterened Skirts)는 왕실의 여성이 예복을 착용할 때 갖춰 입는 하의입니다. 부금이나 직금으로 된 여러가지 무늬 장식이 있는 스란단이 치마의 아래쪽에 2단으로 부착되어 있습니다. 의례복을 입을 때에는 대란치마 안에 장식단이 1단인 스란치마를 겹쳐 입는 것이 일반적 이었습니다.
사진의 대란치마는 남색과 홍색으로 되어 있는데, 허리둘레 105cm, 길이 130cm, 폭은 361cm로 되어있습니다.


공주의 혼례복의 마지막 활옷 디자인
받침옷을 갖춰입은 뒤에 마지막으로 입는 것이 활옷입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활옷은 보통 모란이나 연꽃을 중심무늬로 배치하고 군데군데에 봉황이나 물새 등을 표현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활옷 중에서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의 혼례복인 홍장삼(활옷)과 허리에 두르는 넓은 띠는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목둘레를 곡선으로 처리한 뒤에 동정을 좁게 달아놓은 디자인 이라던지, 앞길과 소매에 찍은 원앙무늬 금박, 그리고 다른 활옷과 구별되는 자수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온공주의 활옷에는 중심무늬가 있기 보다는 일정한 크기의 모란과 연꽃, 화초, 나비, 보배무늬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가득 수 놓아져 있습니다. 이는 덕온공주의 자수 구성과도 비슷한 것으로 보아 19세기 궁중 활옷의 유형을 보여줍니다.


왕비와 왕세자빈의 후수와 대대
덕온공주의 홍장삼에 더해졌을 장식은 직접적으로 전해지지 않지만, 왕비와 왕세자빈의 예복을 입을 때 허리에 두르던 장식인 후수와 대대를 통해 공주의 홍장삼에 더해졌을 장식의 형태를 유추해볼 수는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20세기 초의 것으로 예상되는 왕비와 왕세자빈의 대례복, 혹은 왕의 대례복 등과 같은 예복의 허리에 두르던 장식입니다. 큰 띠인 대대와 그 띠에 부착하여 뒤로 늘어뜨리는 장식인 후수가 하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