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디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디오르, 디올, 크리스찬 디올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패션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는 1947년 ‘뉴 룩’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새로운 룩을 발표하면서 당당히 이름을 알리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제약과 궁핍에 시달리던 전 세계의 여성들은 뉴 룩에 열광하면서, 여성미를 과시하고 멋을 즐기는 방향으로 줄달음쳤다. 크리스찬 디올은 뉴 룩을 시작으로 전세계의 스커트 길이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름을 드높이게 되었다. 도대체 뉴룩이라고 하는 것이 뭐길래, 디올 이야기만 나오면 뉴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지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 크리스찬 디올의 뉴룩의 탄생
1947년 봄, 크리스찬 디올은 새로운 실루엣으로, 가슴은 부풀려서 올리고 꽉 조인 허리에 힙을 강조한 뒤 짧은 재킷을 매치시켰다.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등장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프랑스 엘레강스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이 새로운 이상형은 코르셋으로 조여맨 가는 허리와 둥글게 곡선을 살린 가슴과 엉덩이, 땅에서 12인치 정도 올라온 스커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디올은 뛰어난 솜씨의 재단과 게피에르라 부르는 미니 코르셋으로 최대한 허리를 가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엉덩이 앞쪽 뼈에는 패드를 넣고 소매는 둥그스름한 진동둘레에 끼워 넣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각이 진 남성적인 옷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적인 실루엣의 의복은 베일을 늘어뜨린 작은 꽃 무늬의 모자와 하이힐, 단추 구멍이나 손수건과 조화시킨 화려한 색깔의 장갑, 구두 및 가방과 같은 색조의 길고 가는 우산 그리고 두 줄 또는 네줄의 진주 목걸이와 함께 코디하였다. 이를 보고 하퍼스 바자(Haper’s Bazaar)의 편집장인 카멜 스노(Camel Snow)는 후에 패션사에 기록될 만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My dear Christian, your clothes have such a new look”
“나의 친애하는 크리스찬, 당신의 옷은 마치 새로운 룩이라 할 만 하군요”
카멜 스노의 말 덕택에 디올의 의상은 뉴 룩이라고 하는 전설적인 이름을 얻게 된다.
3. 뉴 룩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반응
이러한 뉴 룩의 실루엣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어떤 스커트는 20야드의 천을 필요로 했고, 디올은 이 때문에 과도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영국 상무성의 장관 스테포드 크립스(Sir Stafford Cripps)는 낭비로도 보이는 과도한 원단 사용 에 대해서 “법이 있어야 한다.”고 표명하기도 하였다.
뉴 룩(new look)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반드시 긍정적인 반응만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유럽 전역과 미국까지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전쟁 후의 사회 환경을 반영하는 글래머러스한 실루엣을 찾는 반면, 달라스(Dallas)에서는 1,300명의 여성들이 뉴 룩을 반대하는 ‘Little Below the knee Club’을 결성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700여 개의 사무실 직원들이 뉴 룩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만큼 뉴 룩의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이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 때문에 더 알려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스타일은 많은 미국 상점에서 복제되고, 매우 유행하게 된다. 1947년 디올이 미국에 와서 뉴 룩의 조잡한 복제품들이 난무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상점을 위한 컬렉션을 디자인하여 미국에서 전면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그 해, 디올의 뉴 룩 전체 판매량 중의 절반은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1948년 디올은 뉴욕의 5번가(5th avenue)와 57번가(57th street)에 그의 첫 해외 지점을 개설한다. 다음 해에는 양말, 메리야스류의 소개와 함께 그의 이름을 라이선스하는 첫 디자이너가 된다.
4. 크리스찬 디올의 새로운 라인 컬렉션
1950년대에는 크리스찬 디올이 발표한 모드가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면서 디올 가에서는 6개월마다 봄과 가을에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라인들을 발표하였다. 마치 오늘날 패션 브랜드들이 봄/여름과 가을/겨울로 시즌을 나눠서 작품 발표를 하는 것과 유사했다. 이들 새로운 라인들은 영어 알파벳과 유사한 실루엣을 가져 알파벳 라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50년 파리 봄여름 컬렉션에서 발표한 수직선, 직선적인 시스(sheath) 실루엣의 버티컬(vertical) 라인과 오블리크(oblique) 라인, 1951년 파리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달걀 모양, 타원형의 오벌(oval) 라인을 선보였다. 1953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둥근 어깨에 가슴은 크게 강조하고 허리 밑으로는 가늘게 하여 튤립꽃 형태와 같은 튤립(tulip) 라인을 발표했고, 195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장 파투의 S라인과 1955년에는 Y라인을 선보였다.
195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전체적으로 날씬한 체형에 알맞게 된 일종의 튜블러(tubular) 실루엣으로 허리는 가늘게 하고 부풀린 앞가슴은 평평하게 처리한 H자 모양의 H 라인을 발표했고, 1955년 가을에 발표한 어깨에서 가슴까지 흐르는 듯한 실루엣으로 전체적으로 날씬해 보이며 때로는 수직형으로 강조될 때도 있는 Y자 형태의 Y라인, 1955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어깨선에서부터 치맛단, 또는 허리에서 치맛단에 이르는 옷자락이 점점 넓어져서 A자 형태를 나타내는 A라인이 등장했다. 1956년 봄에는 알파벳 F자 형태와 비슷한 F 라인, 일명 애로우(arrow)라인이라고 불리는 라인을 선보였는데, 애로우란 화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활처럼 똑바른 실루엣을 칭한다.
1957년 가을에 발표한 스핀들(spindle)라인은 중앙부가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윗부분에서 아래로 가늘게 된 물레의 방추형태와 같이 디자인되었다. 1958년 봄에는 디올 사의 이브 생 로랑이 좁은 어깨에서 드레스의 밑단까지 플레어가 지게 한 사다리꼴 형태의 트라페즈(trapege) 라인 등을 연속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들 라인의 실루엣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전시 중의 군복 스타일에서 벗어나 여성의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한 우아한 어깨, 풍부한 가슴, 가는 허리, 꽃처럼 펼쳐지는 스커트로 표현된다. 이는 지금의 디올에서도 계속적으로 선보이는 대표적인 실루엣이라고 할 수 있다. 1957년 크리스찬 디올이 사망할 때까지 그는 세계 패션계의 주도자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그 뒤를 이어 이브 생 로랑이 트라페즈 라인과 커브 라인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디자인을 보고 “프랑스를 구제했다.” 라는 말이 나올만큼 예지와 기예를 발휘하기도 했다.
5. 맺음말
1950년대는 크리스찬 디올이 전세계를 주름잡았다고 할 만큼 크리스찬 디올을 시작으로 파리 디자이너들 작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잡지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디올 디자인에 열광하던 유럽과 미국의 소비자들은 프랑스 패션을 더 굳건히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