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패션 역사: 사회적 배경과 패션의 변화

1900년대 패션

1. 1900년대 패션 역사의 개요

1900년대는 많은 예술가들에 의하여 새로운 예술사조가 등장하는 가운데 생활 전반에는 아르누보 스타일이 풍비하였다. 의생활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 실용성, 편안함을 통한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이 새로운 멋으로 부각되었는데, 여성복에서는 푸아레, 샤넬 등에 의해 현대적인 감성으로 표현되었다. 남성복에서도 에드워드 7세에 의해 추구되었던 우아한 스포츠 패션의 등장으로, 20세기를 통하여 계속 패션의 키워드가 될 캐주얼화, 스포츠화의 경향을 예고하였다.

2. 1900년대 사회적 배경

19세기를 통하여 민주사회로 구조적 변화를 거의 달성한 서양에서는 산업사회로 급속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전기는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왂고, 길 위에는 마차 대신에 자동차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20세기가 과학과 정보화의 시대라면 그 기초는 처음 10년 간에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한편, 산업화를 빨리 이룬 강대국들은 원료 공급과 시장 개척을 위하여 밖으로 식민지 확보에 나섰으며, 안으로는 세력 간의 외교적 균형을 이루어 벨 에포크(bell epoque)라 불리는 평화시대를 이루었다. 물질적 풍요와 평화로 인해 생활 전반에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뛰어난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 양식들이 많이 나타났다.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도 드높은 감각과 감성의 자유를 구가하게 된 프랑스에서는 20세기를 빛낸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여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만들었다. 현대 미술의 원형을 창조했다고 평가받는 피카소가 1904년 파리에 정착하여 1907년 큐비즘으로 주목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패션의 역사에서 이시기를 에드워디언 시대라고 부를 만큼 패션과 사교생활을 중요시하였던 에드워드 7세가 즉위하여 패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며 활기를 불어넣었다.

3. 1900년대 패션

20세기를 전후하여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과학과 기술 분야는 당시의 생활양식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직물, 색채, 재단 및 봉제술 등은 의복 착용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였으며, 직업, 스포츠, 여가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3.1. 여성복

세기말의 의사, 예술가, 여성단체에 의해 시도된 의생활의 개혁과 해방은 여성 패션이 더 기능적이고 편안하게 변화하였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여성 패션은 소재의 사용이나 재산 및 트리밍 처이 등에서 매우 사치스럽고 호화로웠으나 색상은 중후하였으며, 이는 입은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3.1.1. 아르누보와 S레터 스타일

허리를 강조하는 S형의 실루엣이 1908년경까지 계속되었다. 몸통과 힘들 코르셋으로 졸라매어 가슴 부분을 강조하였으므로 옆에서 볼 때 S자형으로 보였다. 세미말 이래 애용되던 하이 네크 칼라와 가슴이 강조된 풀 보디스의 상의에 스커트의 엉덩이 부위는 꼭 맞고 아래쪽으로 치맛자락이 퍼지면서 많은 주름을 형성하였다. 데이 웨어에는 높은 스탠드 칼라를 부착하였으마, 이브닝 웨어에는 김페 파인 브이 네크라인이나 스퀘어 또는 라운드 네크라인이 사용되었고 때로는 레이스나 얇은 천으로 피슈(fichu)를 달기도 하였다.

3.1.2. 셔츠 웨이스트 블라우스와 스커트, 테일러드 재킷

여성의 사회활동이 점점 증가하면서 치마길를 짧게 하고 남성복에서 받아들이 셔츠 웨이스트 블라우스와 스커트의 착용이 널리 보급되었다. 기성복으로 보급되던 남성복과 같은 형태의 블라우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프릴, 터킹, 주름, 레이스, 자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식되었다. 소매는 좁고 길거나 비숍 슬리브, 퍼프 슬리브, 레그 오브 머튼 슬리브 등이 인기가 있었다. 때로는 기모노 슬리브도 입혀졌는데 넓고 긴 소매에는 러플 장식이 달렸다. 1905년 이후에는 7부 길이로 짧아진 소매들이 등장한다.

치마는 여러 폭으로 된 고어드 스커트(gored skirt)형이 많았다. 길이는 여러가지로, 트레인이 있는 것도 있었는데 브레이드, 주름, 터킹, 스티치, 러플 등으로 다양하게 장식하였다. 남성복과 같은 재킷 종류도 많이 입었는데 길이는 허리에서 엉덩이 길이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짧은 재킷은 비교적 꼭 맞았고 긴 재킷은 남성복 재킷과 같이 헐렁하여 색(sack) 스타일이었다.

3.2. 남성복

3.2.1. 드레스 코드에서 디너 재킷으로

검은 드레스 코트와 흰 베스트, 윙 칼라(wing collar), 케이프, 톱 해트(top hat), 외알 안경 그리고 단춧구멍에 꽂은 카네이션 한 송이, 이것이 바로 종종 물랭 루주(Moulin Rougue)의 포스터에 그려지거나 당시의 인기 소설 괴도 루팽의 모습으로 묘사되던 벨 에포크 시대의 전형적인 멋쟁이 신사의 정장차림이다. 그러나 이렇게 애용되던 검은 드레스 코트들은 약간 캐주얼하고 편안한 디너 재킷의 등장으로 매우 의례적인 경우에만 착용하게 된다. 디너 후에 스모킹 룸에서 착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스모킹 재킷(smoking jacket)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던 이 재킷은 곧 유럽과 미국으로 유행되어 현대적 우아함의 상징처럼 되었다. 무엇보다도 캐주얼하고 세미 포멀한 간편함 때문에 카지노나 스파, 휴양지 등에서 많은 신사들이 즐겨 착용하여 프랑스에서는 몬테 카를로라고 불렀다. 미국에서는 턱시도 파크 클럽에서 명칭이 유래하여 턱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3.2.2. 에드워드 7세의 실용적 우아함

1901년에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왕위를 계승한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당시의 남성 패션계에서도 제왕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전 유럽의 테일러들이 몰려들어 그의 사진을 찍고 옷차림을 기록할 정도였다. 세기의 전환점에서 에드워드 7세는 실용성과 편안함을 남성복에 도입함으로써 남성 패션에서 진정한 의미의 현대를 여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는 뛰어난 취향으로 라이프 스타일과 의생활에서 실용적 우아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새로운 세대의 스포츠 웨어를 소개하였다. 폴로, 사이클링, 테니스, 카누, 세일링 등 야외 운동은 단순히 신체운동만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멋, 사교생활을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아하면서 실용적인 스포츠 패션이 출현하였고, 니커보커즈(knickerbockers)와 노퍽 수트(Norfolk suit) 등이 유행하였다.

3.2.3. 라운지 수트, 모닝 코트, 프록 코트

19세기를 통하여 가장 널리 입혀졌던 프록 코트는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등장과 함께 그 착용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 다시의 유럽의 대도시에서 행인들의 옷차림을 관찰한 기록에 의하면 라운지 수트가 절대적으로 많아 프록 코트의 3배 가량, 모닝 코트의 2배 정도 되었다고 한다. 프록 코트는 연령이 높은 계층이나 의례적인 경우에 착용되었는데, 1901년에 멋쟁이로 알려졌던 프랑스 대통령인 폴 데스카넬이 전통적인 드레스 코트 대신에 프록 코트 차림으로 결혼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모닝 코트는 세미 포멀한 특성 때문에 인기가 있었으며 검은색이나 회색 또는 줄무늬가 있는 바지와 같이 입었다.

통이 좁은 바지와 같이 입었던 라운지 수트는 중류, 하류 계층의 유니폼이 되다시피 하였다. 넓은 어깨와 작은 라펠에 포 버튼(four button)의 재킷은 바지와 함꼐 전체적으로 테이퍼드 실루엣이었고 이 당시 패션 감각을 추구하는 도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의복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트는 점점 인체에 꼭 맞게 되었고, 라펠은 길어졌다. 발목 길이의 바지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졌으며, 위로 접어올린 바짓단(커프스)이 있었으며, 다리미질하여 바지주름을 세웠다.

회색이나 짙은 갈색 또는 어두운 파란색 등의 트위드나 홈스펀, 서지 등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서지가 가장 인기있었다. 오버코트는 수트에 따라 맞추어 입었다. 이 시기에 가장 우아한 오버코트는 체스터필드로서 싱글 여밈에 벨벳 칼라가 달렸는데 세미 포멀한 경우에 입었다. 그리고 홈스펀이나 해리슨 트위드로 만들어서 약간 두터운 얼스터(ulster)는 더블 여밈이었으며 여행이나 일상 외출복으로 캐주얼하게 착용하였다.

맺음말

1900년대 패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바로 ‘패션’이라는 것이 단지 추세나 유행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와 문화, 기술 등 많은 요소와 결합하여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변화와 발전을 겪어가는 인간 자체를 반영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