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패션: 사회적 배경 및 패션/뷰티 트렌드

1910년대 패션은 현대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패션의 척도는 ‘건강이 보장되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입을 수 있는 독립적인 옷’을 말한다. 즉, 이전의 옷들은 코르셋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입을 수 있었다면, 현대 패션은 혼자서 착용가능한 의상인 것이다. 보통 1910년대부터 현대 패션이 등장하는 시기로 여겨지기 때문에 1910년대는 주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대 사회적 배경

189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패션에 있어서도 현대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내연기관, 전화 동신, 전기모터 등은 수공예 기술에 의존하지 않은 싸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라디오, 통신, 텔레비전 등이 개발되면서 가정생활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의 포드(Ford) 자동차 회사는 ‘모델T’라고 하는 일반 서민들도 구매가능한 자동차를 선보이면서 자동차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자동차의 대중화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넓혀주었고, 여성들의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번거로운 페티코트나 지나치게 커다란 드레스 등은 자동차를 타기 힘들었기 때문에 자동차를 탈 때 입는 모터(motor) 드레스는 더 실용적이고, 단순해졌다. 모자도 챙이 좁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줄 수 있는 끈이 달린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좌)포드사의 모델T / (우)자동차 탑승시 입던 모터드레스

1910년대 초반까지는 비대칭의 균형을 추구하는 곡선적이고 추상적인 아르누보가 대세였는데, 전쟁을 겪고 191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직선적이고 기계적이고 장식적인 아르데코로 변화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유행한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직선적,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의 아르데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1910년대 후반이고 이는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좌)아르누보 / (우)아르데코

1910년대 중반은 1910년대를 통틀어 가장 기록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1914년부터 1918년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실용적이면서 경제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그들의 공백을 여성들이 메꾸게 되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자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게 된다. 경제와 과학의 발전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신여성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요구는 더욱 강해졌다.

 

1910년대 패션 트렌드

여성복

여성복은 1900년대부터 시작된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S자 실루엣에서 점차 어깨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T자 실루엣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복에서는 깃털이나 리본, 베일 등으로 장식된 크고 챙이 넓은 모자가 필수적이었다.

1910년대 패션을 보여주는 프랑스 잡지 Femina에 실린 일러스트
프랑스 잡지 Femina에 실린 일러스트(1911)
패셔너블한 오후 드레스(afternoon toilettes)를 입은 여성들. 커다란 챙의 모자와 발목 길이의 드레스가 1910년대 초기 패션스타일을 잘 보여줌

1910년대 초반: 폴 푸아레(Paul Poiret)의 전성기

1910년대 대표 디자이너 폴 푸아레

Paul Poiret

“나는 내 옷에 서명을 할 때마다 나를 이 명작의 창조자로서 여긴다.”

폴 푸아레는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로 여성의 몸을 압박하던 코르셋을 최초로 없앤 디자인을 공개하며,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또한 동양의 이국적인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한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폴 푸아레가 유행시킨 스타일이 아주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하이웨이스트 라인이 특징인 엠파이어 튜닉, 이슬람교의 사원에 설치된 첨탑(미나렛: Minaret)의 모양을 닮은 미나렛 스타일, 발목으로 갈수록 폭이 극적으로 좁아져 걸음을 편안하게 걸을 수 없음에도 인기가 많았던 호블(Hobble) 스커트, 오리엔탈풍의 바지인 하렘 팬츠, 달걀 모양의 코쿤 실루엣 등이 있다.

1910년대 중반: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전쟁을 겪으면서 의상들은 실용성과 활동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옷 제작에 소요되는 원단의 양과 노동량을 줄이기 위해 의상의 장식은 사라지고, 디자인은 심플해졌다. 또한 활동성을 좋게하기 위해서 스커트의 길이는 짧아지고, 그러다보니 신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래는 심(seam)라인에 숨겨져 있어 겉에서 안보이던 주머니가 겉면에 드러나게 부착이 되면서 실용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재킷은 편안하게 엉덩이를 덮는 길이로 길어지고, 당연히 코르셋이 사라지고 허리는 넉넉한 루즈핏으로 변화하였다.

겨울용 모직(wool)이나 니트, 스웨터 등은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의 군복에 먼저 사용되었다. 떼가 잘 타고 비실용적인 밝은 색의 옷 보다는 군복에서부터 따온 어둡고 탁한 색(카키, 검정 등)들이 유행하였다. 활동할 때 입는 데이웨어(daywear)와 작업복에 가장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1910년대 후반: 포스트워(post-war, 1918-1919)

전쟁 이후에는 허리선이 없고, 길고 날씬한 형태의 코트가 유행하였다. 스커트는 여전히 좁은 스타일이 유행하였고, 길이는 발목까지 내려왔다.

 

남성복

남성복은 변화가 사실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에 남성복의 형태가 재킷, 조끼, 바지의 비즈니스 수트 형태로 갖춰진 이후에는 형태나 종류의 큰 변화는 없이 디테일만 다소 변화하였다.

1910년대 남성복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패드를 넣은 각진 어깨가 트렌드였다면, 1910년대는 자연스러운 어깨모양에 허리가 들어가고 허리선이 약간 높은 신사복으로 변화하였다.

평상복으로 입던 남성들의 모닝코트(프록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상류층이나 혹은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예복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남성복은 전체적으로 캐주얼화 되었는데, 이 캐주얼한 수트를 영국에서는 라운지(lounge) 코트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는 색(sack) 코트라고 하는 수트차림이 일반화가 되었다.

 

1910년대 헤어/메이크업 트렌드

1910년대 헤어 트렌드

여자들의 머리 모양은 덜 부풀린 웨이브 머리를 하였고, 진보적인 여성들은 짧은 직선의 커트 머리를 애용하였다.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유행하다보니 머리보다는 모자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앞에서 뒤로 빗어 넘긴 형태가 유행하였다.

1910년대 메이크업 트렌드

1910년대는 자연스러운 화장이 유행하였다. 따라서 희고 투명한 피부를 강조하였고, 눈썹과 눈, 입술 화장은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일부 여성들은 러시아 발레단의 영향으로 무대에서 사용되던 인조 속눈썹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마스카라, 아이섀도우 등 아이 메이크업 제품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흑백 영화의 발달로 콜(coal)과 마스카라로 눈매를 그윽하고 깊게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동양풍의 오리엔탈리즘의 붐이 일어나면서 신비스러우면서도 강한 색조가 인기를 끌면서 메이크업 색이 풍부해지기도 하였는데, 눈을 옆으로 길어보이게 하는 아이라인이나 눈두덩이에 강렬한 색상을 바르는 메이크업이 일부 선도적인 여성들에 의해서 시도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