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60년대 사회적 배경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분쟁, 월남전, 중국의 문화혁명, 1967년 미국 인종 폭동 등 세계는 이념과 이권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강력한 소비군단이 되어 돌아온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는 낙천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소비자들은 부모 세대와 차별화 된 그들만의 스타일을 원했기 때문에 전쟁 전과 전후 세대 사이의 세대 차는 더욱더 확실히 벌어졌다. 대량 소비주의 시대에 접어들자 모든 부문에서 미국의 입지가 강화되었으며 세계인들은 이 국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규제와 통제는 사라졌고, 인간은 1965년에 이미 달 위를 걷고 있었다. 첫 번째 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했고, 비행기가 운항된 지 60년 만에 프랑스의 콩코드기는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대서양을 건넜다.
1962년 비틀즈가 첫 앨범을 발매했고, 이들의 자유로운 정신세계와 음악을 비롯해 패션까지 젊은이들의 모방 대상이 되었다. 비틀즈를 시작으로 1960년대 중반 영국은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는 음악 혁명을 경험하고 있었다. 카나비 스트리트(Carnaby Street)와 킹스 로드(King’s road)는 흐느적거리는 장발의 소년들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쇼트 헤어의 소녀들로 넘쳐났고, 팝 뮤직의 비트와 함께 런던은 틴에이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1968년 파리 교외의 낭테르 대학에서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 방을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대해 반기를 들어 촉발된 학생 저항 운동은 자유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후 저항 운동은 이슈를 막론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2. 1960년대 패션 변화
1960년대에 이르러 패션계에도 급진적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이 시기는 패션 비즈니스의 기본적인 형태가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주류 패션 트렌드와 관계없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 패션이 풀현한 시대이다. 자신들만의 독창적 문화 저력을 지닌 젊은이들은 더 이상 하나의 트렌드만을 좇지 않았다. 지난날 패션 지향적이 아니라는 것이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1960년대 이후로 이것은 ‘개인적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2.1. 영국이 패션에 미친 영향
1960년대 중반 영국 음악계의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영국 주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런던으로 진출하여 비틀즈의 스텝을 추종하거나 자유로운 영국 아가씨들을 만나는 것이 유행을 선도하는 최고 멋쟁이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다. 당시 카나비 스트리트는 유니섹스와 영국식 괴이한 패션의 본거지였으며, 이 장소는 곧 소규모 개인 부티크들이 있는 킹스 로드 부근으로 이동되었다. 킹스 로드는 당시 유행한 히피 문화와 함께하는 로맨틱 퇴폐주의를 표방한 부티크의 천국이었다. 이들 중 단연 메리 퀀트(Mary Quant)의 의상이 주목 받았다. 오트 쿠튀르를 거부하고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저렴하고 재미있는 디자인을 내놓았던 퀀트는 1963년 미니스커트와 핫팬츠를 소개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3년 후인 1966년 허벅지까지 올라간 초미니스커트를 내놓으며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패션이 기성복 왕국인 미국의 노하우를 얻어 전세계로 퍼져 나간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2.2. 프랑스가 패션에 미친 영향
영국에서 새로운 패션의 붐이 일어나는 동안 1965년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쿠레주가 혁명을 일으켰다. 쿠레주의 목표는 희소가치가 있는 파리 오트 쿠튀르를 이미 사회 각 계층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에 맞춰 적응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샤넬은 50년 전 자신이 세워놓은 전통을 고수하며 무릎 노출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했고, 이브 생 로랑은 전설적인 몬드리안 드레스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3. 모자와 헤어의 변화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여성이 1960년대 새로운 여성상이었다. 미니스커트에 뒤이어 맥시 코트, 쇼츠, 블루종, 무릎길이 부츠 등이 유행하면서 외모의 혁명이 뒤따랐다. 이전시대 멋쟁이의 필수 아이템이었던 모자는 여러 가지 액세서리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사양실을 걷게 된다. 이후 여성들은 특별한 경우에만 모자를 착용했고, 대신 염색과 펌을 즐기거나 가발을 착용했는데, 이는 결국 모자를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20세기 후반 헤어드레서의 부상을 예고했다. 패션 산업의 급진적 발전은 패션의 성장이 동시대의 경제적 상황을 그대로 투영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구매력이 증가한 젊은 세대, 전쟁과 궁핍에서 벗어난 새로운 낙관주의와 공고한 사회적 대변동, 이 모든 것은 1960년대를 인간 행동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세대로 만든 요인이었다. 1960년대는 청년들 사이에서 장발이 급속도로 번져나갔고, 소녀들은 비달 사순 식으로 손질한 쇼트 컷 헤어에 미니스커트로 스타일을 완성했다.
3. 새로운 디자이너의 출현
1950년대부터 시작된 우주 시대의 환상은 1965년 달 착륙을 계기로 패션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 접근 방식을 변화시켰고, 당시 파리 패션을 주도하고 있던 앙드레 쿠레주, 파코 라반, 피에르 가르뎅은 미래 지향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험적 소재를 사용한 작품들을 앞다투어 소개했다.
3.1. 앙드레 쿠레주
이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미래의 이미지를 작업에 반영한 디자이너는 앙드레 쿠레주이다. 그의 대표작은 ‘은박 의상(silver foil)’을 들 수 있다. 1961년은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지구 궤도를 비행한 해이며 동시에 쿠레주가 자신의 첫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때이기도 하다. 영국의 움직임이 미래 패션을 주도할 것이라고 확신한 쿠레주는 미니스커트를 파리에 전파시켰고, 자신의 시도가 시대에 역행하는 파리의 오트 쿠튀르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길 소망했다. 디올의 뉴룩에 비견될 만한 ‘화이트 컬렉션’으로 명성을 떨친 쿠레주는 몸에 밀착된 니트, 미니멀한 의상과 어울리는 외두, 바지, 미니스커트를 위주로 한 개성적 룩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러시아 구성주의나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의상에 차용한 혁신적인 것이었다.
3.2. 파코 라반
파코 라반은 실험적 재료를 중심으로 피에르 가르뎅은 구축적 형태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우주 세계를 표현했다. 초기부터 모던 디자인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지녔던 파코 라반은 전통적 의복 소재인 원단 대신 알루미늄, 플라스틱, 철 조각, 비닐 등을 재료로 한 실험적인 디자인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을 찾고 있던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3.3. 우주 패션의 업적
우주시대 패션의 업적은 프랑스 쿠튀르에 스트리트 패션의 주역인 유니섹스 스타일을 세련되게 접목하여 재해석 했다는 것이다. 거리의 남녀 모두 유니타드(점프수트), 튜닉, 레깅스를 변형한 의상을 즐겨 입었고 패션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예외가 아니었다. 피에르 가르뎅 쇼에서는 둥근 헬멧과 플라스틱 보안대를 착용하고 산업용 지퍼로 마무리 된 점프수트를 입은 모델들이 활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