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0년대 패션 역사를 알아보려면, 그 당시 사회적인 배경과 정치적, 경제적인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 등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1990년대는 어떠했는지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2. 사회적 배경
1990년대는 지난 세기에 대한 회고와 새로운 세기에 대한 전망, 그리고 새천년을 맞게 된다는 설렘과 두려움으로 전세계가 술렁거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20세기를 정리하는 움직임과, 새로운 세기에 일어날 변화에 대한 예고가 있었다.
진정한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시작되어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 끝났다고 할 정도로,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점철된 20세기는 20세기말 소련의 해체로 미국-소련의 양자 대립 구도가 무너짐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91년 벽두를 장식한 걸프전쟁은 한달 여만에 미군 및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나, 미국이 전세계의 맹주로 존재하며 새로운 세기에도 세계의 패자로 군림할 것임을 확실히 예고하였다.
1990년대의 글로벌리즘은 모든 사람들의 생활 변화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즉, 전자 통신과 교통 수단의 발달, 그리고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문자 그대로 ‘세계는 하나의 지구’임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1996년의 유럽 광우병 파동의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일련의 전세계적 현상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들에서 물리적 거리가 지니는 의미가 점차 약해져 감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3. 패션
‘패션의 최신 유행어는 미니냐, 맥시냐, 스트레치냐가 아니라 세계화’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나온 말이다. 1990년대 패션의 주요 키워드는 스타일보다는 세계화였다. 1990년대 들어 전세계인의 생활 변화에 기반하여 패션에 있어서의 새로운글로벌리즘이 대두되었다. 즉, 케이블 텔레비전, 위성방송, 인터넷, 패션 잡지 등을 통하여 최신의 세계 패션 정보가 전세계에 동시에 전달되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증가하였다. 또, 최신 패션 정보를 일반인들이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어 패션은 국가나 문화의 장벽을 쉽게 뛰어넘어, 세계인이 공유하는 일상의 한부분이 되었다.
한편,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들이 파리 컬렉션에 대거 진출하여, 1995년 10월에 열린 S/S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는 사상 처음 외국인 디자이너의 쇼가 프랑스인의 쇼보다 수적으로 많았다. 이제, 종래와 같은 ‘파리’의 영향력은 약해지는 대신, 이탈리아와 런던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패션 거대 기업들이 등장했는데, 특히 LVMH 그룹은 구찌, 지방시, 루이 비통, 셀린느, 로에베 등의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사들임으로써 패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1) 여성복
1990년대 스타일은 자연주의, 민속풍, 복고풍이 패션 테마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거리 패션의 영향력 또한 커졌다. 이전에는 함께 사용하지 않던 소재나 색상의 대비, T.P.O.가 다르다고 여겨져서 함께 입지 않던 아이템을 함께 입는 것 등 새로운 시도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페리 엘리스사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1993년 음악, 거리, 젊은이 문화에 영향을 받은 컬렉션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지(grunge) 룩의 탄생이다. 이것은 흐트러져 보이게 옷을 입는 것으로 이후, 안나수이, 크리스찬 라크루아, 칼 라거펠트의 샤넬 컬렉션에서도 선보이게 되어, 결국 거리에서 태어나 하이패션으로 옮겨 간 셈이 되었다. 이밖에도 거리의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되어 남녀를 불문하고 1990년대 젊은 층을 위한 패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힙합 패션이 있다. 이것은 밑위가 무릎까지 올 정도로 긴 배기 팬츠를, 안에 입은 박서 쇼츠의 유명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허리 고무 밴드가 보이도록 내려 입고, ‘거리를 청소한다’고 할 정도로 바짓단을 길게 끌고 다녔던 것으로, 역시 헐렁한 상의를 입고 매우 큰 사이즈의 둔탁한 신발을 신었다.
그런지 패션 이후 유행한 것은 미니멀리즘 패션으로, 이것이야말로 1990년대를 특징짓는 패션이다. 의복에서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이란 의복의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였던 것으로, 이로써 직물이 디자인에서 부각되었고 의복의 몸에 맞는 정도가 더 중요해졌다. 1990년대 들어, 사람들은 자신의 옷장에 너무 많은 디자인의 옷이 넘쳐난다고 생각하였으며, 기본적인 스타일을 원하게 되었다. 따라서 무채색을 주로 사용한 직선적인 실루엣의 재킷과 바지, 치마, 기본적인 이너웨어로서 터틀넥이 상점들을 점령하였다. 미니멀리즘 패션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캘빈 클라인, 질 샌더, 헬무트 랭, 프라다 등을 들 수 있다.
(2) 남성복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제안되었던 넓은 어깨와 각진 라펠, 헐렁한 바지의 Y 실루엣의 남성복은 1990년대 들어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대신, 1970년대부터 시작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남성 신체를 편안하게 살려주는 부드러운 실루엣과, 캘빈 클라인의 미니멀리즘적인, 남성의 신체 형태를 과장하지 않고 몸에 꼭 맞는 정장이 함께 유행하였다. 남성복에 있어서 신체 형태가 과장되지 않은 정장이 유행함으로써 스포츠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199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남성들은 턱시도에 화려한 색채의 조끼를 입기도 하였고, 화려한 색채의 수트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1996년 S/S 시즌, 구찌는 블랙앤화이트의 남성 정장에 칼라가 없는 상의와 화려한 색의 스카프를 매치시켰다. 1996년 이후 장 폴 고티에는 남성들을 위해 치마바지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코르셋을 제안하기도 하는 등, ‘남성다움’에 대하여 색다르게 해석, 보여줌으로써 영국에서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1999년에는 남성용 치마가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성적으로 모호한 상태를 말하는 앤드로지니가 1990년대 남성 패션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였다.
4. 맺음말
1990년대는 20세기의 마지막 10년간으로, 회고와 전망으로 전세계가 술렁거렸다. 냉전 종식 이후 시장 경제 논리에 의해 세계는 재편되었고,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지구상의 물리적 거리는 의미를 잃어갔으며, 환경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었다. 세계화가 화두였던 1990년대 패션은 전세계인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실질적 구매 행위를 보이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판매 방식이 시도되었고, 거리 패션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세계적으로 미니멀리즘, 복고풍, 민속풍 패션, 시스루 룩이 꾸준히 인기를 모았다. 새로운 남성복 디자인이 특히 많았으며, 스포츠 웨어의 영향이 커졌다. 1990년대의 글로벌하게 이루어진 변화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현대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